어제였죠. 대한민국 현대사에 기록되었던 김신조 목사가 향년 82세로 별세했습니다. 그는 북한 무장공비 출신에서 귀순해 지금까지 목회자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는 과거에 대한민국 청와대에 침투했던 북한 무장공비 공작원이었지만 귀순 과정을 거친 이후 평생 동안 목사의 삶을 이어왔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김신조 목사의 청와대 습격사건 내용과 가족 및 프로필 정보와 함께 그의 삶을 되돌아보겠습니다.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향한 그림자
김신조(金新朝), 그의 이름이 대한민국 역사에 기록된 건 1968년 1월 21일, 바로 ‘청와대 습격 사건’ 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북한은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고 대한민국 체제를 흔들 목적으로 북한 정찰국 124부대 소속의 무장공비 31명을 남파시켰습니다. 이들은 군사분계선 철책을 끊고 남하해 북한산을 넘어 서울 중심부까지 침투했고, 청와대까지의 거리는 불과 500미터였습니다. 하지만 이 침투 작전은 당시 비상근무 중인 경찰의 불심검문에 의해 발각되면서 무산되었고 현장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으며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경무관과 경찰관이 순직했습니다. 당시 무장공비 31명 중 29명이 사살되었고 1명은 북한으로 도주, 남은 한명 김신조만 생포 후 귀순하게 됩니다.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충격의 고백과 전향
생포 직후 기자회견장에서 김신조는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
라고 대답해 대한민국 국민들을 경악케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정보기관의 집중 교화와 조사를 거치면서 그는 서서히 자신의 선택과 체제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고, 결국 귀순자 신분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새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의 전향은 단순한 생존이 아닌 이념의 붕괴와 인간성 회복의 상징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회심의 시작: 죄책감, 방황 그리고 사랑
하지만 김신조는 귀순 후에 한동안 심한 죄책감과 방황에 시달렸습니다. 죽어간 동료들, 북한에 남겨진 가족, 자신의 과거를 쉽게 떨쳐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술, 담배, 도박 등과 같은 자포자기식 방황을 하던 도중 한 줄기 빛이 된 존재를 만나게 되는데요. 다름아닌 아내 최정화 씨였습니다. 그는 1970년, 귀순 3년째가 되던 해 편지를 통해 위로와 격려를 보내온 여성과 결혼하게 되었고, 이후 가정의 안정감과 종교에 대한 믿음이 그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1981년, 그는 아내의 권유로 성락교회에서 침례를 받으며 신앙의 길에 들어섰고 1989년에는 ‘기독인귀순용사선교회’를 창립하여 탈북자 및 귀순자 사역에도 힘을 쏟기 시작합니다.
1997년 목사 안수…청와대 침투일의 ‘되갚음’
놀랍게도 김신조는 청와대 습격사건이 일어난 지 정확히 29년 후인 1997년 1월 21일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후 경기도 남양주 성락삼봉교회와 서울 영등포구 서울성락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유와 믿음의 소중함을 알리는 설교를 이어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를 돌며 안보 강연 활동도 활발히 펼치면서 청소년, 군 장병, 시민들에게 “북한에서는 절대 누릴 수 없는 자유”를 강조해왔습니다.
정치적 참여와 북한 인권 활동
김신조 목사는 종교인으로서의 활동 외에도 한나라당 북한 인권 및 탈북자 납북자 위원회 고문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는 직접 선거에 출마하거나 정계에 본격 진출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경험은 대한민국 안보정책 및 대북인식 변화에 실질적 영향을 준 사례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김신조 목사 프로필 한눈에 보기
이름 | 김신조(金新朝) |
생년월일 | 1942년 6월 2일 |
사망일 | 2025년 4월 9일 (향년 82세) |
출생지 | 함경북도 청진 |
국적 변천 | 일본령 조선 → 북한 → 대한민국 |
가족 | 배우자 최정화, 아들 1명, 딸 1명 |
종교 | 개신교 (침례교) |
학력 | 서울침례신학대(신학), 방송통신대(국문학) |
경력 | 북한 124부대 소속 무장공비 → 귀순자 → 목사 |
주요 활동 | 목회, 안보 강연, 북한 인권 위원회 고문 |
빈소 | 서울 영등포구 교원예움 서서울장례식장 |
김신조 목사의 별세가 주는 의미
김신조 목사의 삶과 죽음은 청와대 습격사건이라는 역사적 충격에서 출발한 그의 인생이 용서와 회심, 사명으로 완결된 하나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귀순자로만 기억될 인물을 넘어서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반성하고 이야기하고, 소통하하면서 목회자의 길을 걸었던 역사의 산 증인이었습니다.
마무리하며 : '자유'와 '책임'을 증언한 한 사람의 생애
“남한은 꿈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나라입니다.” 그의 이 한 마디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있습니다. 김신조 목사의 사망 소식은 그가 역사 속 한 줄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들로 하여금 분단된 한반도에 남은 과제와 대한민국의 자유의 가치를 다시금 의미 있게 가슴에 새겨보라는 진심어린 조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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